우리나라 대중가요에서 있어서 그룹사운드는 60년대 미 8군 시대부터 발전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우리의 그룹사운드 중심에는 신중현이 있었다.
하지만 70년대~80년대 우리의 대중음악계에서 주류를 이끌어온 그룹사운드의 전성기는 그룹 산울림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은 70~80년대의 유명한 그룹사운드인 산울림을 조명해 본다.
지금은 해체된 전설의 그룹이 되었지만 한 때는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삼형제 그룹이다.
필자는 그룹 산울림을 한국의 비지스로 부르곤 한다.
그룹이나 음악의 성격상 너무나 비슷한 부분 때문이기도 하다.
1977년 mbc에서 개최한 <제1회 대학가요제>가 있었다.
그 유명한 ‘나 어떡해'가 대상을 받으면서 지금도 7080의 대표곡이 된 사건의 시발점이 된 것으로 본다 해도 무방한 사건이다.
제1회 <대학가요제>에서는 그룹 산울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서울대 농대 5인조 그룹사운드 ‘샌드페블즈’가 대상을 받게 되는데, 한 학교에서 한 팀만 출전하게 되는 규정에 따라 서울대에서도 자체적으로 예선을 했다고 한다.
사실 샌드페블즈란 이름은 서울대학교 내의 캠퍼스 밴드 이름으로 이 곡을 부른 샌드페블즈는 6기였다.
1회 대학가요제 사회를 본 사람이 이 밴드 2기 출신으로 당시에는 4학년에 재학중인 이수만이었다.
SM회장 출신 그 이수만이다.
서울대학교 자체 예선에서 3인조 밴드 ‘무이(無異)’가 ‘문 좀 열어줘’란 곡으로 1위, 샌드페블즈 6기가 2위를 하면서 서울대학교 대표 대학가요제 참가자격은 무이가 가져가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룹 ‘무이’의 리더 김창완이 당시에 이미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기에 출전 자격을 잃게 됨에 따라 무이는 대표 출전 자격이 상실되었고, 대신 2위였던 샌드페블즈가 대표 자격으로 대학가요제에 출전하게 된다.
그룹 무이의 멤버 김창훈은 자신이 만든 곡 “나 어떡해”를 후배 밴드 샌드페블즈에 주었고, 샌드페블즈는 그 곡으로 가요제에 참가하여 대상을 받게 된 것이다.
즉, 샌드페블즈의 막후 실력자는 그룹 무이였고, 비록 가요제에 참가는 하지 못했지만 샌드페블즈의 성공으로 인하여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그룹명을 ‘산울림’으로 바꾸고 그해에 공식 가요계에 데뷔하게 된다.
1977년 12월 그룹 산울림은 “아니벌써”를 담은 제1집을 발표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오늘 그룹 산울림의 첫 번째 곡으로 들려드리는 곡이 바로 산울림 데뷔곡인 1977년 발표곡 “아니 벌써”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0deHcNFCEDs
이듬해인 1978년 5월에는 2집인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라는 곡을 발표하게 되는데 전주가 길기로 유명한 곡이다.
6분여의 러닝타임 곡 중에서 전주가 절반이 넘는 3분 20여 초의 베이스 전주가 깔리는 곡이다.
전무후무한 곡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한 그해에는 어린이 동요앨범을 발표하는데 동요 1집인 “개구쟁이”가 발표가 되면서 어린이들에게도 상당한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 해에 3집 앨범도 발표가 되지만 큰 반응을 얻는 데는 실패하였고 이듬해에 두 동생이 군에 입대하게 된다.
잠시 공백기를 가질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지만 김창완은 그동안 녹음해 두었던 곡과 영화음악으로 산울림 4,5,6집을 연달아 발표하게 되었다.
그중에서 1979년 4집은 영화 ‘내일 또 내일’의 OST를 맡아 OST음악과 라디오 주제가 등으로 꾸민 앨범이었다.
그러나 크게 드러난 음악은 없었다.
그러나 그해 9월에 발표한 5집은 “한낮의 모래시계”라는 곡이 대중들에게 사랑받으면서 활동을 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인기가도를 달리게 된다.
또한 1980년에 발표한 6집 앨범은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와 “빨간 풍선”이 연달아 히트함으로써 동생들이 없는 공백기를 훌륭히 메꾸어 나가게 되었다.
오늘 산울림의 두 번째 들려드리는 곡은 산울림의 이름으로 발표되었지만 사실상 김창환 원맨 밴드 형식으로 발표되었던 곡 중에서 크게 사랑을 받은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9QmSr0DUvM0
이후 두 동생들이 제대한 후 본격적인 그룹을 재정비해서 1981년 7집 앨범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앨범에서는 “가지 마오”, “청춘”, “독백” 등이 히트하게 되었다.
특히 “독백”은 바로 밑의 동생이자 ‘나 어떡해’의 작곡자인 김창훈이 작곡하고 직접 부른 곡이다.
7집 앨범 발표한 뒤 두 달 만인 1981년 10월에는 ‘산 할아버지“를 담은 두 번째 동요집을 발표한 바 있었다.
1982년 3월에는 8집 앨범을 발표하고 “내게 사랑은 너무 써”, “회상”이 많은 사랑을 얻게 된다.
그 후 한 달 만에 ‘이게 웬 긴 꼬리냐’를 담은 동요집 3집을 발표했다.
1983년 9집 앨범은 그닥 대중에게 크게 사랑받은 곡은 없었지만, 1984년에 발표한 10집은 “춤추는 밤”, “너의 의미” 등이 사랑받았고, 1986년에 발표한 11집은 “안녕”, “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라는 다소 슬픈 곡들이 대중에게 어필된 바 있다.
김창완은 이후 연기와 DJ로 활동하면서 초희라는 청취자의 사연을 담은 『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1990년)한 바 있고, 이것을 토대로 1991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가 있다.
이 영화의 삽입곡이 바로 초희가 가장 좋아했다던 산울림의 “안녕”이란 곡 이어서 가슴 찡하게 한다.
초희는 결국 골수암으로 20세가 되기 이전에 사망하게 된다.
오늘 그중에서 산울림의 세 번째 곡으로 1986년 발표곡 “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이 영화에 삽입된 곡들이 전반적으로 산울림의 11집 앨범의 곡들이 아니었나 생각되기도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weucc2MFyfI
이후로는 각자의 사업활동으로 가요계와 떨어져 생활하면서 그동안의 베스트 앨범만 발표되었었고, 팬들 사이에서는 그룹 산울림이 해체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많았을 때였었다.
실지로 맏인 김창완은 연기자 활동을 했었고, 두 동생들도 각자 나름의 사업을 해왔었기에 가요계에서 존재감은 김창완만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 상황 속에서 1991년 산울림이라는 이름으로 12집 앨범을 발표했지만 사실상 김창완만의 솔로 앨범 성격이 컸던 앨범이었다.
이 앨범에서 주목받았던 곡은 없었다.
이미 산울림은 “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가 마지막 히트곡이었다.
오늘 필자가 그룹 산울림의 곡으로 네 번째 들려드리는 곡은 바로 1991년 12집 앨범에 수록되었던 곡인 “동창생‘을 들려드리고자 한다.
추억을 생각하게 하는 참 아련한 곡이기에 이 곡을 꼭 전해 드리고자 싶은 곡이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1997년 13집을 발표했지만 신세대 댄스뮤직과 랩음악이 상륙하면서 산울림은 서서히 잊혀 가게 되었다.
그러나 김창완의 음악적인 열정은 그럼에도 식지 않은 채 14집을 준비하게 되지만, 막내인 김창익이 2008년 1월 캐나다에서 지게차 사고로 사망하게 되면서 산울림은 2008년 공식 해체하게 되었다.
그 뒤로도 김창완은 2014년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면서 추모곡인 “노란 리본‘이라는 곡을 만들어 사고자와 유가족을 위로하기도 했다.
지금은 연기자로서 TV에서 중견연기자로 호평받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dl5hfVTSQ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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